작성일 : 14-06-17 18:58
눈물을 통한 치유
 글쓴이 : 신가회
조회 : 1,625  
<P>수재에다 착하고 예쁜 딸을 졸지에 잃은 부부가 있었다. 이 딸에게 큰 희망을 걸며 애지중지 모든 정성을 쏟아서 키웠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영원히 이별하게 된 슬픔과 상처가 이 부부에게는 너무도 깊게 새겨졌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금슬이 좋던 부부 사이마저 갈라놓았다. 아내는 남편을 미워하고 남편은 아내를 미워하다가 급기야 각방을 쓰게 되더니 이제는 상대방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BR><BR>상실의 충격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며 교인들의 존경을 받던 분들이라 충격과 슬픔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겉으로 보기엔 의연하게 그 모든 아픔을 초연하게 이겨낸 부부로만 보였다. 더구나 이분들은 슬픔을 표현하면 믿음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속으로는 슬픔과 분노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고 자신의 모습이 이중적이요 위선적으로 보여 하나님 앞에서도 자책감만 쌓여갔다.<BR><BR>부부는 오랫동안 울지 못한 채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살았다. 그토록 사랑하던 자식을 잃고도 울지 못했다. 울지 못한 채, 애도의 과정이 없이, 딸아이를 진정으로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채,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자 부인에게는 우울증과 홧병이 생겼고 남편에게는 날카로운 핀잔과 잔소리가 원망의 소리가 늘어갔다. 몇 년 후 부인은 무서운 병에 걸렸다. 그러나 병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과 고통이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심령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BR><BR>부인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상담실을 노크했다. 첫 눈에 보기에도 초췌하고 슬퍼 보이는 인상이었다. 한 시간으로 예약된 상담은 거의 다섯 시간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못하던 이 부인이 결심한 듯 입을 열기 시작하자 그 동안의 슬픔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차마 부인의 슬픔과 눈물과 하소연과 마음에 가득 찬 언어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BR><BR>얘기를 듣는 내내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그 무엇보다도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그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눈물을 삼키며 마취도 않고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고스란히 참아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함께 고통을 나누며 손을 잡고 울어주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BR><BR>우리 어머니도 다 큰 자식을 여읜 아픔을 경험하신 분이다. 교통사고로 끔찍하게 막내아들을 잃고 어머니는 미친 듯이 아들이 다닌 거리를 몇 달이고 쏘다니셨다. 집에 돌아오면 마당에 주저앉아 땅을 치고 통곡하셨다. 그 눈물로 온 거리의 슬픔을 다 씻어내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1년여를 애통해하며 아들을 떠나 보내셨다. 울고 또 울고, 소리지르고 또 소리지르며 자신의 한과 슬픔을 토해내는 ‘애도의 기간’을 보내고 나서 어머니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속히 돌아갈 수 있었다. <BR><BR>그런데 죽은 딸을 가슴에 묻은 슬픔을 수 년 동안 조금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이 부인의 숨막히는 슬픔은 영혼의 상처가 되었고 육체에 치명적인 병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BR><BR>시간이 흐르고 이 세상 사람의 얼굴빛이 아닌 채로 말을 마친 부인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BR><BR>“주여, 이분의 아픔을 아시나이다. 이분의 슬픔을 아시나이다. 살펴주소서. 모든 아픔과 슬픔을 주님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소서. 십자가의 보혈의 사랑과 능력으로 치유하여 주소서. 가슴에 파묻어 놓은 오래된 슬픔과 상처를 이 시간 치료하여 주소서. 슬픔을 슬퍼할 수 있도록 심령의 문을 열어주소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토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모든 슬픔이 낱낱이 사라지게 하소서.”<BR><BR>마침내 주님의 손길이 부인의 마음을 만지기 시작하셨다. 견고한 슬픔의 높은 탑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딸을 여읜 후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던 그 해묵은 슬픔이 토해져 나오기 시작했다. 통곡이 그치지 않았다. 몸부림을 치며 아무 것에도 구애 받지 않은 인간 본연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BR><BR>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일뿐이었다. 손을 잡아드렸고, 함께 울어주었다. 어린아이처럼 내 품에 머리를 묻고 울고 또 울었다. 많은 사람들과 상담 중에 함께 울면서 기도한 적이 있지만 그때처럼 마음이 아픈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상의 가장 큰 슬픔 중에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슬픔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천국의 소망을 둔 사람들일지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이 상실의 아픔이야말로 사람이 일생 중에 겪어야 하는 가장 큰 고통이 아닐까. <BR><BR>부인의 통곡은 점점 기도로 변해갔다. 하나님 앞에서도 한번도 딸의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았었다고 했는데 이제야 하나님께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BR><BR>“하나님이 저를 믿음 없다고 하실까봐 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울지 않기를 바란다고 제멋대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의 슬픔과 고통을 내어 놓습니다. 치료해 주세요.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한을 치료해 주세요.”<BR><BR>오래도록 극도의 슬픔을 표현하며 통곡하고 나자, 먹먹하게 막혔던 가슴이 뚫리기 시작했고 누런 슬픔의 얼굴빛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눈에 띄게 회복되고 밝아진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웃음기가 없던 메마른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었고, 남편과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BR><BR>슬픔을 풀어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통곡하거나, 기도하거나, 소리지르거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여 잊고 살거나, 슬프지 않은 것처럼 감정을 억제하거나 등. <BR><BR>유교적인 우리 문화의 배경 아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울지 않는 것이 한 차원 높은 믿음의 사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주님은 다 아셨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인간의 한 평생이 얼마나 슬프고 애통한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이 겪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수히 상처받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도 다 아셨다. 그러셨기에 주님은 친히 그 모든 슬픔과 고통을 담당하기로 작정하신 것이었다!<BR><BR>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슬픔과 고통이 전혀 없는 채로 살 수는 없다. 때로 그것이 연단이 되기도 하고 십자가의 삶이 되기도 하지만, 애매하게 당하는 고통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 주님이 끔찍한 형벌의 형태로 나의 모든 고난을 친히 담당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 찾아가 나의 심령 속의 것들을 끄집어내고 드러내야 한다. 그리하면 주님의 치유의 손길이 임하게 되고 그 상처는 신속히 치유될 것이다. <BR><BR>타인의 고통을 쉽게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도 안된다. ‘하나님이 치신 거지요. 제가 잘못해서 벌을 주시는 거지요’라는 말을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가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 때 속으로는 ‘저 사람이 뭔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일이 많아서 벌을 받는 거야’란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는 것이다. <BR><BR>우리는 하나님은 다 알지 못한다. 티끌 같은 존재가 우주보다 크신 분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이 고난을 방치해 두심과 세상의 절규와 고통을 그대로 두시는 것과 사고를 막지 않으시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왜 젊은 나이에 신속하게 데려가시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왜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의 이별을 방관하시는지. 고통을 왜 모른 척 하시는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렇게 내버려 두시냐’고 절규하는 고통의 소리를 왜 못들은 척 하시는지.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인간의 한정된 지식으로 알 수 있겠는가.<BR><BR>그러나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이다.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그 어떤 상처와 아픔에서도 구원하시고 치유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오래도록 상처 아래 방치된 채 신음하며 살고 있는 까닭은 이 작은 영적인 이치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상실의 아픔조차도 치유하는 분이시다! 그분에게 그런 능력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 앞에 우리의 슬픔을 내어놓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BR><BR>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애통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주저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이 없는 행동이다. 내가 내 슬픔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는 오만인 것이다. 이 땅에 슬픔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있다. 치유 받은 우리는 그들을 주님 앞으로 데려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에 널린 슬픔과 고통을 치유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이 땅에 모든 아픔을 당한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 눈물 흘리며 아픔을 토로하고 치유 받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BR><BR>강선영 목사 (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P>
<P>[출처: 크리스천투데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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